쉬는 시간

명품인가? 사치고가품인가?

인하자 2008. 8. 17. 08:18
명품의 모럴해저드!
매일경제 2008-08-15 21:06:05

명품을 소재로 다룬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포스터.
"요즘 명품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고가품이지. 명품은 가업을 잇는 장인이 만드는 진귀한 물건인데 중국에서 대량생산하고, 동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부품을 만들어 조립한 가방을 명품이라 할 수 없죠. 이제 명품은 점점 사라지고 히스토리를 파는 명품 마케팅만 남았다고 보면 됩니다."(이탈리아 A가방 브랜드 수입업자)

"상식적으로 명품 시장이 몇 배 규모로 커졌는데 이탈리아나 프랑스 작은 공방에서 만든 수작업품으로 감당이 되겠습니까. 모두 쉬쉬하고 있지만 명품업체 대부분 인건비가 저렴한 제3 국가에서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전직 명품업체 사장)

명품이 대중화하면서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지난 10년간 명품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270조원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지만 지나친 대중화로 명품 비즈니스 핵심인 희소성을 잃는 자승자박 위기를 맞고 있다. 대대손손 가업을 이어온 장인 손에 만들어진 '메이드 인 이탈리아' '메이드 인 프랑스' 제품은 시장에서 점점 사라지고 중국 등 임금이 저렴한 제3국 생산품이나 유럽 공장에서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만든 '메이드 바이 차이니스' 제품들이 판친다. 그러나 명품 회사들은 여전히 왕족과 귀족이 등장하는 수십 년 역사와 장인정신, 수공예품 등 용어를 써가며 소비자를 현혹시키고 있다.

명품도 중국산이 판치고 있다. 아르마니, 휴고보스, 캘빈클라인, 코치 등 명품 브랜드 매장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들이 놓여 있다. 아르마니는 진 제품과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제품 일부가 중국산이고, 휴고보스 점퍼와 셔츠류, 신발, 그리고 캘빈클라인 진과 코치 가방 등은 중국에서 만든다.

명품 대중화로 중국에서 대량생산하는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중국산 명품이 과연 명품이냐'를 두고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중국산이 있는 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속여 파는 것도 아니고 소비자들이 중국산인 것을 알고 사는데 무슨 문제냐"고 반문한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산을 고수하고 있는 다른 명품업체 임원은 "싸게 만드는 걸 몰라서 안 만드는 게 아니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지켜주는 것은 대대로 장인들 손으로 만들어져 온 브랜드 자부심을 지키고 거기에 상응하는 가격을 지불한 고객들에 대한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제3국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이 가격 면에서 더 싼 것은 아니다. 미국 'C'와 'M' 가방 브랜드는 국내와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지만 미국에 한 번 들어갔다가 재수입되면 고급 백화점에서 수십만 원, 생산원가의 3~4배가 넘는 비싼 가격에 팔린다. 프랑스 'L' 브랜드도 모로코와 알제리 등에서 만든 제품 가격이 프랑스산과 큰 차이가 없다. 최근 소비자들이 원산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명품 업체들은 고가품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저가품은 중국 등지에서 만드는 이원화 전략을 구사하는 추세다. 그러나 상당수 고가품 역시 제3국에서 부품을 생산하고 조립만 본국에서 하고 있다.


최근 명품들은 원조국인 이탈리아나 프랑스 제품이라고 해도 예전 생산방식하고는 차이가 난다. 흔히 명품은 자체 공장에서 단독 생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 명품업체 사장은 2~3년 전 이탈리아의 한 구두 하도급공장에서 루이비통과 샤넬, 지미추 구두가 함께 만들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명품 브랜드들이 대량생산하는 대표적인 아이템은 안경이다. 이탈리아 양대 안경 제조업체인 사필로그룹과 룩조티카에서 대다수 명품 브랜드 안경 제품을 동시에 제조하고 있다.

◆ 중국서 만들어도 가격은 차이없어

= 루이비통, 프라다, 페라가모, 샤넬, 버버리, 구찌, 아르마니….

외국에서는 이들 브랜드를 값비싸고 호사스러운 물건이라고 해서 '럭셔리'라고 부른다. 그런데 유독 국내에서만 빼어나고 진귀한 물건을 뜻하는 '명품(名品)'이라고 불리는 것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서 고가 사치재가 명품과 동일어로 사용된 것은 1990년 중반 당시 샤넬, 루이비통, 구찌, 프라다 등이 직진출하면서 이른바 '명품 마케팅'을 들고 나왔기 때문. 이후 고가 수입브랜드 시장이 전성기를 맞으며 너도나도 명품임을 강조하면서 '고가 수입브랜드=명품'이라는 공식이 생겨난 것. 남윤자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명품이 진정한 의미로 사용되려면 상품성에 내재된 가치와 쉽게 접하기 어려운 희소성, 시대 흐름에 부응한 역사성, 그리고 다른 제품과 차별되는 고유성 등 4가지 요소가 충족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명품이 희소성을 잃기 시작한 것은 거대 기업들이 장악하면서다. 루이비통, 셀린느, 디올, 펜디는 모두 프랑스 명품 재벌로 불리는 LVMH(루이비통ㆍ모에헤네시)그룹이 보유한 브랜드다. 명품 쇼핑 1번지로 불리는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을 비롯해 대부분 국내 고급 백화점 1층에 이들 4개 브랜드가 모두 입점해 있다. LVMH에서는 매년 이들 4개 브랜드 고객과 주력상품이 겹치는 것을 피해 판매 전략을 짠다. '루이비통 못 사는 고객에게 셀린느를 팔고, 디올백 못 사는 고객에게는 펜디를 팔아라'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명품 고유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정체성)는 사라진 지 오래고 시장 나눠먹기를 위한 상술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한 패키지 딜도 성행한다. 백화점 신규점에 오픈할 때 캐시카우인 루이비통 입점을 전제로 나머지 브랜드도 함께 좋은 자리에 입점시키는 것. 다른 명품 브랜드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LVMH그룹, PPR그룹, 리치몬트 등 3개 거대기업이 보유한 명품 브랜드 수를 합치면 무려 80개가 넘는다. 현재 이들 기업이 명품 대중화를 통해 막대한 부를 끌어모으고 있지만 브랜드 고유성을 지키지 못하면 '제 무덤 파기'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